일월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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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월산 (日月山)산행기 "
해발 : 1219m 영양군청기면.일월면 일원에 있는 산이다. 일월산은 산세가 하늘에 우뚝솟아 웅장하고 거대하며 산정은 평평하다. 동으로는 동해가 바라보이고 해와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하여 일월산이라 부르며 정상부에는 일자봉(日字峰) 월자봉(月子峰) 두 봉우리가 솟아있고 청축사라는 사찰터와 황씨부인당.용화사.천화사.용화선녀탕 등 볼거리가 많다. 일월산 산나물(참나물, 금죽,나물치,더덕 ,고사리, 싸릿대, 어수리,등)은 맛과향이 뛰어나 인기가 높다.
일월산은 토산으로 여인의 젖무덤 처럼 순하고 부드러우며 일월산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영양 출신들은 일월산을 닮아 마음이 부드럽고 유순하기 이를 때 없다. 또한 일월산은 령산(靈山)으로 실령 스러우며 특히 음기가 강한 여(女)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믐날 내림굿을 하면 점쾌가 신통해진다 하여 전국 각지의 무속인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무속인 들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추앙받는 산이기도 하다. 위험하고 험한 길, 희미 하게 열려있는 하산길에 신중하게 하산에 임하여 매번 무사 산행에 감사하며 또한 내가 걸어온 인생 살이에 무었이 잘 안풀리고 마음이 가깝 할때마다 찾아오는 일월산이다, 다음에 또 찾을것을 기약하며 오늘 산행기를 적을까 합니다.
산행일시: 2024년 6월 2일 산행시간 : 6시 30분 산행코스 : 찰당골-추자봉-동화재-일월재-월자봉-일자봉 선녀탕-용화2리로 정한후 대구에서온 산우와 함께 영양의 모태인 일월산을 찰당골로 오르기로 하였다.
찰당골로 오르는 이유중의 하나는 찰당골이 땜(저수지)공사가 완공되여 수몰(水沒)되여 추억의 길이되고 또 하나는 창당골에서 동화재를 오르는 능선에 있는 토산이지만 모양세가있는 암봉이 많은 곳이다. 나무잎이 무성하면 잎에 가려 사진으로 확실한 모양은 담을수는 업지만 일월산 창당골과 동화재 능선 사이에 있는 많은 기암 괴석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오늘을 택하였다. 아침 일찍 찰당골에 도착 하였다. 도착한 찰당골은 그 수려 하였든 옛날의 모습은 간대 온대가 없고 모두가 절계지(切開地)가 되여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다른곳에 와 있는 착각(錯覺) 마저 들게한다. 찰당골 동화제로 오르는 길은 옛날에 등산을 다닌 길은 모두가 절개지(切開地)가 되여 있어서 추자나무골로 들어가 용화2리로 넘어가는 길을 택하여 걸으며 나이가 많은 산꾼이 이 길을 다시는 걸어볼수 없는길이라 생각하니 무었인지는 모르나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
절개지를 벗어나 추자봉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급한 오르막 길이라 땀은 비오듯 흐르고 숨은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듯하다. 추자봉에 올라 숨 한번 가다듬고 계속 올라 비조암에 도착 하여보니 옛모습 그대로 우뚝 솟아있구나. 비조암에서 사진한장 찰칵. 비조암이라 누가 이름을 붙혔는지는 모르나 마치 비들기가 하늘로 날아갈듯한 바위의 형상을 이곳 저곳에서 감상을 하여보며 자연의 걸작품에 감탄할 따름이다. 비조암을 지나 불과 얼마 오르지 않아 다래바위가 있다 다래바위를 지나 장군바위를 찰칵 한후 동화재 방향으로 계속 오르다가 좌측편에 두몸이 한몸이된 연리지(連理枝) 소나무가 있어 또 한장. 이어서 장군바위를 지나 10여분 오르니 다시 산꾼의 발을 멈추게 한것은 작은 가지에 고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나무를 발견 또 한장. 이어 동화재 능선을 다 올라와서 일월산이 만든 걸작품인 창문 바위를 만나게 된다. 창문바위는 사람이 기여 다닐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뻥 뜰인 바위 돌이다. 굴의 길이는 10m 가량되며 무었인지는 모르나 많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바위 처럼 보인다. 창문바위를 뒤로하고 급경사지를 내려가면 동화재를 약 20m 남겨놓고 우측으로 칼바위 (입암 선바위를 닮음)를 보기 위하여 가는 중간에 많은 무속인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기도바위를 지나 칼 바위를 사진한장 담은후 돌아오는 중간에 앉아 잠시나마 사념(思念)에 젖어본다. 내가 만약에 조선 시대에 태여 났다면, 삿갓하나 쓰고, 구부러진 나무 지팡이 하나 집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일월산 능선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하여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와 크게 한번 웃어본다. 함께온 일행은 내가 웃는 이유도 모르고 돌았느냐고 비아냥 거린다. 일월제를 돌아 일월산의 월자봉에 도착하였다 월자봉 아래에 부인당이란 암자가 있다. kbs 전설의 고향에도 소개된바있는 부인당의 전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 황씨부인당의 전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성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워낙 인물이 고와 마을의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결혼하고 싶어했다. 황씨 처녀는 두 총각 중 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新房) 문앞에서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신방문에 칼날 그림자가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신랑은 앞마당의 대나무 그림자를 칼 그림자로 잘못알고 처녀를 빼앗긴 연적(戀敵)이 앙심을 품고 자신을 죽이려고 숨어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랑은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족두리와 원삼도 벗지 못한 채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처녀의 시신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있었을 때처럼 앉음새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돌부처처럼 앉아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 했다. 한편 멀리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처녀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사이에는 아이가 생겨도 낳기만하면 이내 죽곤했다. 답답한 마음에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바로 황씨 규수의 억울한 원혼 때문이라고 했다. 뒷늦게나마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친 신랑은 지금의 일월산 부인당 자리에 신부의 시신을 옮기고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했고, 그때서야 신부의 시신이 홀연히 삭아 없어졌다고 한다.
일자봉을 돌아 용화리로 하산을 한후 오늘의 산행을 마칩니다.
야 정 김 한 원
해발 : 1219m 영양군청기면.일월면 일원에 있는 산이다. 일월산은 산세가 하늘에 우뚝솟아 웅장하고 거대하며 산정은 평평하다. 동으로는 동해가 바라보이고 해와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하여 일월산이라 부르며 정상부에는 일자봉(日字峰) 월자봉(月子峰) 두 봉우리가 솟아있고 청축사라는 사찰터와 황씨부인당.용화사.천화사.용화선녀탕 등 볼거리가 많다. 일월산 산나물(참나물, 금죽,나물치,더덕 ,고사리, 싸릿대, 어수리,등)은 맛과향이 뛰어나 인기가 높다.
일월산은 토산으로 여인의 젖무덤 처럼 순하고 부드러우며 일월산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영양 출신들은 일월산을 닮아 마음이 부드럽고 유순하기 이를 때 없다. 또한 일월산은 령산(靈山)으로 실령 스러우며 특히 음기가 강한 여(女)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믐날 내림굿을 하면 점쾌가 신통해진다 하여 전국 각지의 무속인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무속인 들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추앙받는 산이기도 하다. 위험하고 험한 길, 희미 하게 열려있는 하산길에 신중하게 하산에 임하여 매번 무사 산행에 감사하며 또한 내가 걸어온 인생 살이에 무었이 잘 안풀리고 마음이 가깝 할때마다 찾아오는 일월산이다, 다음에 또 찾을것을 기약하며 오늘 산행기를 적을까 합니다.
산행일시: 2024년 6월 2일 산행시간 : 6시 30분 산행코스 : 찰당골-추자봉-동화재-일월재-월자봉-일자봉 선녀탕-용화2리로 정한후 대구에서온 산우와 함께 영양의 모태인 일월산을 찰당골로 오르기로 하였다.
찰당골로 오르는 이유중의 하나는 찰당골이 땜(저수지)공사가 완공되여 수몰(水沒)되여 추억의 길이되고 또 하나는 창당골에서 동화재를 오르는 능선에 있는 토산이지만 모양세가있는 암봉이 많은 곳이다. 나무잎이 무성하면 잎에 가려 사진으로 확실한 모양은 담을수는 업지만 일월산 창당골과 동화재 능선 사이에 있는 많은 기암 괴석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오늘을 택하였다. 아침 일찍 찰당골에 도착 하였다. 도착한 찰당골은 그 수려 하였든 옛날의 모습은 간대 온대가 없고 모두가 절계지(切開地)가 되여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다른곳에 와 있는 착각(錯覺) 마저 들게한다. 찰당골 동화제로 오르는 길은 옛날에 등산을 다닌 길은 모두가 절개지(切開地)가 되여 있어서 추자나무골로 들어가 용화2리로 넘어가는 길을 택하여 걸으며 나이가 많은 산꾼이 이 길을 다시는 걸어볼수 없는길이라 생각하니 무었인지는 모르나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
절개지를 벗어나 추자봉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급한 오르막 길이라 땀은 비오듯 흐르고 숨은 목구멍까지 차 오르는듯하다. 추자봉에 올라 숨 한번 가다듬고 계속 올라 비조암에 도착 하여보니 옛모습 그대로 우뚝 솟아있구나. 비조암에서 사진한장 찰칵. 비조암이라 누가 이름을 붙혔는지는 모르나 마치 비들기가 하늘로 날아갈듯한 바위의 형상을 이곳 저곳에서 감상을 하여보며 자연의 걸작품에 감탄할 따름이다. 비조암을 지나 불과 얼마 오르지 않아 다래바위가 있다 다래바위를 지나 장군바위를 찰칵 한후 동화재 방향으로 계속 오르다가 좌측편에 두몸이 한몸이된 연리지(連理枝) 소나무가 있어 또 한장. 이어서 장군바위를 지나 10여분 오르니 다시 산꾼의 발을 멈추게 한것은 작은 가지에 고무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나무를 발견 또 한장. 이어 동화재 능선을 다 올라와서 일월산이 만든 걸작품인 창문 바위를 만나게 된다. 창문바위는 사람이 기여 다닐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뻥 뜰인 바위 돌이다. 굴의 길이는 10m 가량되며 무었인지는 모르나 많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바위 처럼 보인다. 창문바위를 뒤로하고 급경사지를 내려가면 동화재를 약 20m 남겨놓고 우측으로 칼바위 (입암 선바위를 닮음)를 보기 위하여 가는 중간에 많은 무속인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기도바위를 지나 칼 바위를 사진한장 담은후 돌아오는 중간에 앉아 잠시나마 사념(思念)에 젖어본다. 내가 만약에 조선 시대에 태여 났다면, 삿갓하나 쓰고, 구부러진 나무 지팡이 하나 집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일월산 능선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하여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와 크게 한번 웃어본다. 함께온 일행은 내가 웃는 이유도 모르고 돌았느냐고 비아냥 거린다. 일월제를 돌아 일월산의 월자봉에 도착하였다 월자봉 아래에 부인당이란 암자가 있다. kbs 전설의 고향에도 소개된바있는 부인당의 전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 황씨부인당의 전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황씨 성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워낙 인물이 고와 마을의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결혼하고 싶어했다. 황씨 처녀는 두 총각 중 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新房) 문앞에서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신방문에 칼날 그림자가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신랑은 앞마당의 대나무 그림자를 칼 그림자로 잘못알고 처녀를 빼앗긴 연적(戀敵)이 앙심을 품고 자신을 죽이려고 숨어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랑은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족두리와 원삼도 벗지 못한 채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처녀의 시신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있었을 때처럼 앉음새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돌부처처럼 앉아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 했다. 한편 멀리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처녀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이들 부부사이에는 아이가 생겨도 낳기만하면 이내 죽곤했다. 답답한 마음에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바로 황씨 규수의 억울한 원혼 때문이라고 했다. 뒷늦게나마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친 신랑은 지금의 일월산 부인당 자리에 신부의 시신을 옮기고 사당을 지어 혼령을 위로했고, 그때서야 신부의 시신이 홀연히 삭아 없어졌다고 한다.
일자봉을 돌아 용화리로 하산을 한후 오늘의 산행을 마칩니다.
야 정 김 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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